‘꽉 끼는 것’과 ‘딱 맞는 것’. 같은 물건을 두고 두 사람이 다르게 설명한 표현이었다. 한 사람은 개의 주인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개 조련사였다.
개가
워낙 과격해서 통제가 안 될뿐만 아니라 주인도 물고 주변에도 피해를 끼치기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고 잘 키워보겠다는 의도로 개 조련사에게
데리고 왔던 상황이었다.
개의
행동을 보던 조련사가 훈련하기 전에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입마개를 씌우자고 했는데, 그 입마개를 보면서 주인은
‘꽉 끼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조련사는 ‘딱 맞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주인이
‘꽉 끼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개를 너무 사랑하고 좋아해서 입마개를 씌우면 개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해하고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그래서 실제로도 입막개를 하면서도 개에게 불편하지 않은 것,
충분히 벗겨낼 만한 것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입막개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아파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딱 맞는 것’을 ‘꽉 끼는 것’으로 불편하게 여기면서 개의 잘못된
행동을 통제하지 못했고, 주인도 물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해를 하는 것을 부추긴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개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도리어 그 개를 더 문제의 상태로 방치해버렸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이러한 회피나 방관의 태도가 있지는 않을까? 죄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죄의 달콤함에 빠지거나 혹은 너무 가혹하다는 핑계로 무의식적으로 허용하며 그 죄에 빠져들고 죄로 인해 더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고 인내한다는 잘못된 착각을 버젓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는 방관하거나
묵인한 그 사람이 고스란히 입게 되어 있다.
죄에
대한 단호함을 ‘꽉 끼는 것’이라고 불편하게 여기지 말고 ‘딱 맞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고 진정으로 죄에서 자유를
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