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계장치의 도움없이 바다로 잠수해 전복 같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사람을 해녀라고 부르고 이렇게 잠수하는 것을 물질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제주도에 해녀가 유명해서, 제주해녀는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해녀체험 장소가 있습니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는데, 초급은 그냥 서있을 수 있는 정도의 깊이입니다.
서있다가 잠시 얼굴을 물 속으로 집어넣어서 가까이 눈에 보이는 해산물을 손쉽게 채취하는 수준이지요.
그런데
초급에서 해녀체험을 하는 분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황당한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해녀에게는 바로 앞에 쉽게 보이는 해산물인데 얼굴을 집어넣고는 물속의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 바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얼굴을 집어넣고는 찾아보고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 속에서 눈을 뜨고 시선을 고정해서 살펴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바다속을 살피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니 해녀체험이라고 해산물을 채취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눈
앞에 있는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눈 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러한 이유로 해산물을 채취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신앙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육신의 눈은 잘 뜨고 있지만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인
일을 성령 안에서 살피는 것은 익숙하지도 않고, 경험도 없고, 훈련도
없어서 뻔하게 눈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분별하지 못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열매 맺는 기회도 놓쳐버리도 합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영적인 상황을 잘 살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익숙하지면 그만큼의 은혜와 축복을 분명히 누리게 됩니다.